쌤은 연극동아리 왜 해요?

안민중 연극동아리 공연을 마치고...

춘계방학을 하기 전에, 설인(가명)이가 찾아왔다. 설인이는 연기와 노래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으로, 2년동안 나와 함께 연극동아리를 한 학생이다.

"쌤!"

"왜?"

"쌤은 연극동아리 와 해예?"

"글쎄...."

나는 연극동아리를 왜 하는 걸까? 이제 교감이라 누가 시켜서 해야 할 업무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시간을 내주지 않아서 힘들다면서 꾸역꾸역 하는 이유가 무얼까?

2017학년도에는 뮤지컬 '철부지들'을 했고, 2018학년도에는 뮤지컬 '귀를 기울여주세요'를 무대에 올렸다. 2년 동안 토요일 오전시간을 투자해서, 공연이라는 작품을 얻기까지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쌤은 수업이 없어서 하는 거라예?"

"그래! 수업이 없기는 하지..."

수업을 하지 않으니까 연극을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1979년에 대학에서 '극예술연구회(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이후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긴 시간을 연극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뜻 이것이다 하고 내놓을 만한 답도 없다. 그냥 좋아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의미도 생기고, 연극인생학교와 극단을 만드는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쌤? 연극하모 머가 좋아예?"

"좋은거 많지. 이것 저것..."

연극을 한다고 하면 연극배우가 되는 것을 떠 올린다. 물론 나와 함께 연극동아리 활동을 한 학생 중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학생이 있다. 러시아 쉐프킨 국립연극대학을 졸업한 제자도 있고...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말하기'다. 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 읽기와 쓰기는 열심히 해도 말하기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기이다. 자신감이 있어야만 설 수 있기에, 연극은 무대에서 공연을 통하여 자신감을 키우기는 아주 좋은 활동이다.

그리고 다른 것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연극은 말하기 훈련이라고 했다시피, 상상력은 '생각하며 말하기'이고, 창의력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며 말하기'이다. 이를 위한 것으로 연극 만큼 좋은 도구는 없을 것이다.

작년에 공연은 앞두고 교장선생님이 창원시내 '도파니아트홀'을 빌려서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교감쌤! 안전의 문제도 있고 한데, 학교에서 고마 하모 안되까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해야하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라는 게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도 아닌 학생들인데 학교 체육관이나 시청각실에서 하면되지, 왜 굳이 전문공연장에서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아이들과 함께 힘들게 일년동안 준비한 것을, 분장, 음향, 조명 등의 여건이 부족한 곳에서 공연하고 나면, 공연에 참여한 아이들의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여건을 마련하면, 공연 후 아이들은 큰 만족감과 함께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 이후 동진중학교에서부터 전문공연장에서 공연을 고집하고 있다.

"쌤은 와 뮤지컬만 할라고 합니까?"

"와? 뮤지컬 안하고 싶나?"

안민중 연극동아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뮤지컬 작품으로 무대화 했다. 사실 나도 안하고 싶다. 그냥 연극만 하면 내가 잘하는 부분이라 걱정이 없다. 하지만 뮤지컬은 연기뿐만이니라, 노래 작곡과 훈련, 안무와 춤연습을 해야 하니 삼중고다. 나 혼자 다 할수도 없고, 시간이 3배나 많이 드는 것을, 왜 해마다 하려고 할까?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는지 몰라도,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 춤과 노래가 함께 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보는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기때문이다.

"쌤! 올해는 와 '우분투' 안해예?"

"어~, 그건..."

작년에는 '우분투 뮤지컬학교' 공모사업을 하게 되어 재정적으로 큰 힘을 얻었다. 외부 지도강사로 김수희 선생님과 김가은 선생님을 모시고 활발한 연극놀이도 함께 진행했다. 올해는 나 혼자 진행하다보니 재미가 덜 했나보다. 물론 노래지도는 혜진샘이 담당하고 있다.

작년 음악도시 창원과 연계한 교육사업으로 '우분투 뮤지컬학교' 공모사업을 창원시와 창원교육지원청이 함께 추진했다. 처음 이 사업을 추진하려 한 목적은, 학교현장에서 뮤지컬을 통해, 학생들의 특기적성을 계발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이후 교육지원청(공모교육장)에서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이 크졌다. 골목의 사회학과 연계되면서 지역사회 이야기를 발굴한 창작극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창작극은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작품성에는 한계가 있다. 청소년 시기에 좋은 작품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여기서 밝히기 어려운 몇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올해는 우분투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물론 올해도 다양한 사업에 공모하여 제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두번째 뮤지컬 공연을 잘 마무리 한 점에 대해서, 교육지원청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향후 다양한 형태의 예술공연활동에 지원이 계속되고,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쌤 가고나모, 우리는 우찌 되능기라예?"

"어찌 되기는...  혜진쌤 있쟎아."

아닌게 아니라, 나도 솔직히 걱정이 되기는 된다. 지금까지 내가 있을 동안에 잘하던 연극동아리가 내가 전근을 가고 나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끼모아'라는 동아리 이름을 지금도 가지고 다니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태봉고는 예외로 아직까지 동아리가 살아있다. 물론 태봉고 연극동아리는 여러 형태로 아직까지 우리의 손길이 보태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연극동아리를 왜 하고 있는가?

연극이 나의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둘이 아닌 하나 인듯한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것 아닐까? 이 물음에 답이 될지는 몰라도, 내가 학교에 있는 한 연극동아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퇴직 후에는 지금 걸음마를 시작한 '연극인생학교 숲'과 '극단 숲'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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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봉 쌤으로 다시 살고자

봉쌤의 교단 이야기 2019.02.16 06:00

안민중학교를 떠나며

 

 

안민중학교에서 관리자로서의 모습이, 마치 첫 발걸음을 떼어놓은 아기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매사가 조심스럽고 잘 해보려고 하지만 뒤뚱거리며 걸었을 것이고, 내 몸을 내 맘대로 가누지 못해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보고자 했던 것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적인 학교경영에 부경영자로서 나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교장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생각으로 학교를 경영하기는 어렵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 속에서 나름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첫걸음이 호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10년 전부터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생님또는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만이 아니라,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시는 분들 모두를 선생님으로 불렀다. 교무행정 선생님, 행정실 선생님, 급식소 선생님, 지키미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줄여서 누구누구 샘이라고 불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직급과 직능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봉고 이후에는 하지 못했다. 혜수쌤, 희철쌤, 은미쌤, 윤정쌤으로 부르지 못하고 교장쌤, 교무부장님, 실장님, 차장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용기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학교의 문화가 아직 이러한 호칭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합의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어본다.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이 이점을 간과하여 어려움을 겪은 줄 안다. 자율적으로 해야 할 일을 반 강제성을 띠고 추진하려 했기에 반발에 부딪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 문화에서 아직까지 아래 직급에서 위 직급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 닉네임을 부르는 방법을 대안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나 또한 태봉고에 근무하면서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여의봉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안민중에 와서도 여의봉의 의미를 전달하고, 메신저를 보낼 때도 이름 대신 사용하기도 했지만, ‘여의봉 쌤이라고는 불리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쌤이라는 호칭보다 교감이라는 호칭에 더 젖어 살지 않았나 하고 성찰해 본다.

 

20193월 새 학기에 창덕중에서 제2기 교감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시 여의봉 쌤또는 봉 쌤으로 살기에 도전해 보고자 한다. 물론 호칭은 내가 강요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고,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무실 문화를 만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호칭문제에 연연하는 것은 서로 평등한 관계와 서로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안민중을 떠나는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그동안 나름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내지 않고 살아내기라는 화두를 어느 정도 실천했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러한 화두를 가진 이유는 이런 생각에서다. 일반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반증이다. 이 말은 내 뜻대로 하려는 의도를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의도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이 생긴다. 그런 연유로 화를 내지 않겠다는 것은 내 뜻대로가 아닌, 우리의 뜻을 모아일을 추진하겠다는 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가지고 살자는 것이었다. 결국 당신의 뜻을 받들고 살겠습니다.’라는 여의봉(如意奉) 정신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아침 교문에서, 학생들의 아침 맞이를 하면서 다양한 이벤트를 했던 것도, 봉으로 살고자 했던 삶의 실천이다. 종이 주인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하듯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봉으로 아침 맞이를 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학생들 얼굴을 잘 모르고,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사용한 방법이었지만, 참으로 좋은 소통방법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내 눈에 익어지고, 이름이 입에서 맴돌다가 툭 터지기도 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힘든 표정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한번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머리띠이벤트를 시작했고,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얌전한 절과 함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던 것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사랑합니다로 바꾸었더니 더욱 활기찬 아침 맞이가 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안민이여!

이제 나는 너를 떠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란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가 되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2019. 02. 15. 아침에 여의봉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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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생학교 숲 1년을 뒤돌아 보며...


는 연극인생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꿈을 벌써 오래 전부터 꾸어왔다. 하지만 그 꿈은 내가 퇴직하고 나서 이 일을 하고자 한 것이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될 줄을 몰랐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다 계기가 있어야, 머리속의 생각이 몸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1년전, 내가 교장공모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난 후, 생각보다 휴유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가 어려웠던지 아내가 먼저 제안을 해왔다. "당신의 꿈인 연극인생학교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퇴직할 때 쯤 자리 잡을 것 아니냐?"며 무기력한 내 마음에 살랑이는 봄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다시 활기를 찾고 학교 생활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2010년 전국 최초 기숙형 공립대안학교 개교에 나는 1년반 동안 파견교사 생활을 하면서 힘을 보태었다. 태봉고가 개교를 하면서 교무부장의 역할을 맡아 4년동안 학교의 초석을 놓은 일에 일조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개교와 함께 연극동아리 '끼모아'를 창단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교사인 류주욱 선생님과 연극강사였던 김수희 선생님과 함께 뮤지컬(노래극)에 도전하였다.


힘든 과정을 잘 견디어 준 학생들 덕분에, 경남청소년연극제, 전국청소년연극제, 개천예술학생연극제 등에서 매년 수많은 단체상과 개인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연극동아리로써 태봉고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이제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연극동아리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게 되었다.


대학에 간 아이들이 졸업하고 다시 돌아오고, 사회로 나간 졸업생들이 연극을 하고싶어 했다. 하지만 연극만으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녹녹하지 않다. 특히 지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삶이 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돈을 적게 들이고 연극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속에서 연극으로 삶이 되게 할 방편으로 생활연극을 찾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공유와 후원으로, 지속가능한 생활연극과 삶을 꿈꾸는 연극노리터" 연극인생학교 숲의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꿈꾸는 청년들의 상상과 창의 연극작업터를 지향하는" 연극공연집단 플렛폼인 극단 숲도 탄생하게 되었다.


세상은 돈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연결과 관계로서 행복한 삶의 터전을 꿈꾸게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 또한 그렇다. 미래의 우리 청년과 청소년들이 꿈을 찾고 가꾸어가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과 '더불어 숲'을 이루어 가고자 한다. 길이 없다고 멈출 것이 아니라, 숲에 새로운 길을 내며 걸어가고자 한다. 우리와 함께 숲길을 걸어 갈 많은 동행을 찾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요? 우리와 함께 하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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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살이를 마무리하며

봉쌤의 교단 이야기 2016.09.14 08:00

내가 대안교육을 한답시고 이 길을 걸어온 지 벌써 8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나의 알음알이는 별로 넓어지지도 깊어지지도 않았다. 태봉을 설립한다고 경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 1년 반을 보냈고, 경남 Wee스쿨에서 2년 동안 파견생활 한 것을 제하고 나면, 태봉에서만 4년 반을 보냈다. 태봉에서의 생활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만큼 큰 의미가 있다. 오늘 아침 여러분들과 함께 내 삶의 흔적을 살펴본다.

 

나는 1959년 의령의 자굴산의 정기를 받아 가난한 농민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남동생만 셋이다 보니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아직도 손에 흙과 물을 묻히고 사신다.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별다른 꿈을 꾸지도 않고 교사가 되었다. 물론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첫 발령을 받았으니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되어서도 현실에 만족하며 큰 어려움 없이 생활했다. 아니 별 생각 없이 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어느 날...

 

내가 교사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삶의 새로운 도전 기회가 왔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일부 몇 사람은 젊지도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그때의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것이, 참으로 의미 있는 도전이 되었다.

 

태봉에 오면서 태전샘과의 만남이 나의 교육자로서의 생활에 많은 성찰을 요구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도록 했다. 교육은 왜 하는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꿈꾸는 것이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LTI교육과정이 우리나라에도 실행 가능한 것인가?, 자율과 규제의 균형추는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등이다.

 

태봉에서 행복한 일은 먼저 좋은 동료교사들과의 만남이다. 처음 10명의 교사가 함께 출발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지내왔지만, 지금 현재 이곳에 계신 선생님과도 마찬가지다. 잠시 한분 한분 떠올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수소리 한 번에 사방이 고요로 물들게 하시고 마음을 챙기라 하시네

원한 마음공부의 스승으로 모시고, 평생 마음을 다스리며 살고지고

련은 몸 만아니라 마음도 필요하니 자주자주 훈련하여 심력을 기르라시네

 

군의 용모를 지닌 듯 훨친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매로

(옹달샘)으로 불리며 매 순간 대안교육에 대한 샘솟는 의문을 가지시면서

기 바짝 든 대안학교 초짜 교감으로 고군분투하며 보내고 계신다.

 

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멋진 흰 수염 바람에 휘날리며 허허 거리시고

수함과 열정으로 가득차서 뜨거운 용암을 입으로 토하듯 불호령을 내리시고

자무식한 자가 읽어도 이해가 되는 쉬운 시를 쓰며 통일을 그리신다.

 

마담이라는 닉네임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비며 산다

상도 말도 구수하게 할 줄 아는 열정적인 강사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시고

려한 날개 짓을 하는 나비의 꿈을 전파하는 옹골찬 여전사이시다.

 

연 많은 태봉살이를 잘 견디어 내고 있는 당신이 장하오

를 쓰다가 몸져 눕기도 했지만, 그래도 명상과 단무도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의 사랑 단단해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어 고맙고 감사하오.

 

정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제자들이 그득한 사람

녕 그대는 둥글게 둥글게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놀이의 달인

간을 겸손과 존중과 감사로 대하는 참사랑 스승의 표본이시다.

 

(흐르는 물)처럼 항상 맑고 밝은 정신으로 고인물 같은 선배를 질책하고

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축해 나가는 맑은 향기를 가진 사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들이받아도 그래야 살 수 있는 거야라고 한다

 

용히 눈을 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꺼덕거리는 사람

도 많아 아이들과 심한 감정싸움에 졸업식장에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사람

망을 노래하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대안교육의 큰 일꾼이 될 사람

 

하고 굵은 선으로 가지고 있으며 무뚝뚝하게 직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

하고 착한 심성으로 모든 아이들을 어머니 마음으로 껴안고 사는 사람

다 검다 말하지 않아도 그 선이 분명한 사람 써니 당신입니다

 

명의 역할을 해 내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그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지?

확한 언어구사능력과 빠른 머리회전으로 대책을 내놓는 달변가이시다

대되는 대안교육 전문가로 미래의 태봉을 이끌어갈 분! 그대 이시다.

 

하하 맑은 웃음소리가 사람들의 방어막을 일순간에 해제 시킨다

봉의 엘티아이는 이 사람을 제외하고 논하지 말아야 할 일꾼중의 일꾼이다

종걸음으로 다니는 모습처럼 열심히 대안교육을 위해 힘쓰소서.

 

학교까지 세 번의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며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친구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친구

이라 부르며 온갖 괴롭힘으로 나에게 친근함을 표하는 못된 친구다

 

대로 그만 둘 줄 알았던 탁구와 배구는 어깨 수술 후에도 계속 되고

서벽지 외로운 섬에 아이들과 함께 무인도 체험활동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계를 정하고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 일관된 지도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없이 넉넉한 가슴속에는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있나요?

구하기만 하면 졸졸졸 샘물처럼 사랑이 솟아 오르네요!

하게 씨익 한번 웃어주면, 세상시름 모두 녹아 내리네요.

 

늘만 이 사람을 보아야 한다면 너무나 가혹합니다

도하게 흐르는 저 강물처럼 늘 함께하고 싶습니다

롯불 속 군밤이 익어가듯 구수함이 베어져 나오는 정깊은 사람이시다.

 

롯하게 모든 것을 갖추고도 아무것도 없는 양 조용한 당신

롱 속에 깊이 넣어둔 보석도 제 빛을 발하듯 아이들 앞에서 그 빛을 발하고

곡을 흘러내리는 저 폭포수처럼 큰 울림을 줄 사람이다.

 

치도 없는 영국생활에 만족하며 배움을 위해 해외연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럼 큰 눈망울 속에는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호수가 있다

과 성을 다해서 아이들과 만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추신) 말로 이 여자를 데려갈 사람 어디 없나요?

 

을 담뿍 담은 표정으로 다가와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구 탐험 도전에 나선 듯 올 들어 외국 나들이가 무척 잦아 행복한 사람이

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쉼표 같은 관리자가 되라고 하네

 

성을 다해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살피는 태봉의 주치의 선생님

많은 학생들이 가까이 와서 힘들게 치닥거려도 화내는 법이 없는 선생님

심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가가고 싶은 선생님

 

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모습에 독서 삼매경이 이런 게 아닐까?

말로 우리 아이들이 책과 함께 삶의 목표를 찾기를 바라는 사람

구실 같이 조용한 곳이지만 치열하게 삶을 논하는 태봉골() 주인장이시다

 

수 차를 끓여내며 방문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사람

수골 무당이 대잡이 하듯 그들이 던져 논 아픔을 풀어내고 지쳤다가

방 도로 기운을 차리며 새로 맞을 아이들을 기다리는 당신

 

녕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사람

미있는 유머로 사람의 얼굴에 생 주름을 피어오르게 하는 사람

제나 행복한 웃음 코드를 찾아서 이곳저곳 교무실을 헤매는 해피바이러스

 

리 뛰고 저리 뛰며 아이들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네

미나는 일들이 많은 듯 항상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해 주시는 님

기 좋은 꽃처럼 맛있는 식사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자 노력 하시네

 

해와 인접한 진해 용원에 사시면서 그 먼 길을 달려 태봉에 오신다

련스러울 정도로 한 세월 모성애로 버티고 살아온 이야기에도 감동이 있다

(부엌)간도 아낌없이 내주어 아이들과 행복한 캠프를 함에 감사드린다

 

에 참기름을 발라 구운 듯 구수한 말씨와 입담으로 주변을 늘 깨어있게 하신다

소 띤 얼굴로 속사포를 쏘듯 말씀도 시원하게 잘하시니 함께하면 행복해진다

취에 해장국처럼 맘 풀이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을 찾으면 됩니데이

 

시같이 발그레한 볼이 될 때까지 이리 저리 몸을 사리지 않고 걸레를 든다

내는 일 한번 본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눈과 입에 미소가 머문다

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성녀처럼 도움을 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다음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태봉 인사법 허그를 실행하면서도 과연 나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도 안아주기를 해줄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낯설어 했지만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주었고, 서먹해 하던 선생님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실행하였다. 이제는 누구나 알아주는 태봉 인사법이 되었지만, 서로 안아주는 것만큼 서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1기 학생을 맞으면서 가슴 벅차던 일,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어주어 성장하게 해주었던 일,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하여 당당하게 서게 되는 일, LTI PT Day를 통해서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도 보여주고 자랑스럽고 당당모습도 보여주어 우리를 감동하게 했던 일 등 모두가 행복한 기억을 남을 것이다.

 

태봉하면 끼모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연극은 아주 좋은 도구이다.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몰입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몰입할 때 우리 몸 속에서 다이드로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이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 큰 성공으로 나아가게 한다. 뿐만 아니라, 넘어지는 연습, 실패하는 연습을 많이 할수록 탄탄한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끼모아는 연극 연습을 통해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넘어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공연이라는 과정에서 앙상블이라는 성공의 보상을 받는다. 태봉살이 3년 동안 넘어지는 연습만 하고 사회에 나가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손잡아 줄 사람이 있을 때 이런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 세상은 넘어지면 손잡아 끌어주기 보다 짓밟는 경우가 많다. 끼모아에서 연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끼모아를 했다고 해서 연기자의 길을 걸을 필요도 없다. 연극을 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할 일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난다. 이 길 또한 가보지 않은 길이고, 거칠고 험한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믿고 사랑을 믿고 나는 이 길을 가련다. 그 길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 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도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별을 향하여

 

 

태봉! 나의 태봉!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지금까지 잘 해 왔듯이 앞으로도 잘 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이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태봉을 맡기고 떠난다. 이제 태봉은 남의 자의 몫이다. 학생이 오고 싶은 학교, 학생이 행복한 학교, 교사도 근무하고 싶은 학교, 언제라도 다시 오고 싶은 학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녕, 태봉~~!

 

2016. 8. 29. 월요일 아침 주를 열며... 여의봉 서용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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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산으로 가는 이유

자연과 함께하는 산길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임도를 따라 트레킹 수준이다. 꼭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로 운동하는 곳은 진해 앞 바다가에 난 해안로 트레킹코스이다. 평지라 큰 무리가 없고 바닷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어 함께 운동하는 맛이 괜찮다. 그런데 차도 옆으로 다녀야 하는 관계로 매연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다.

풀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사진을 찍는 아내 @ 여의봉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장복산 임도를 따라 난 드림로드 트레킹이다. 아직 몸상태가 시루봉 등산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트레킹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 중이다. 자주는 산에 가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산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산을 오르면서 우리 두 사람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산에 가는 것은 운동을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다는 정해진 목표점까지 무작정 올라간다.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흘러내릴 때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이 된다.

길가의 코스코모스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여의봉

그런데 아내는 산에 오르는 목적이 나와 다르다고 한다.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자연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겨 올라가는 도중에 길가에 자주 앉는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살피고 사진을 찍는다. 이름 모를 들꽃에게도 새들의 노래소리도 단풍드는 나무며 도로 가장자리에 피어난 버섯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없다. 산을 오르며 세월을 느끼며,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참을 풀꽃들과 노디다가 뒤따라 오는 모습 @ 여의봉

내가 산으로 오르며 느끼는 것은 해안도로에 갈 때보다 공기가 참 좋다는 것이다. 오르기는 힘들지만 평지를 걸을 때는 자갈소리도 흙을 밟는 느낌도 좋다.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다. 나는 정상까지 힘들게 땀 흘리며 오르면 목표를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하산한다.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내와 함께 오르는 산길에서 느낀다. 일거리를 주말까지 집으로 가져오는 내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요즘은 주말에는 가능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길가에 피어난 버섯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 여의봉

하지만 요즘 다시 새로운 학교 개교업무를 맡으면서 주말에도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생각을 그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하는 일이 벌써 세 번째이다. 올 겨울방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내와 여행도 계획했는데, 또 다시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다. 결혼생활 내내 학교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는 나 때문에 많이 외롭게 보냈다. 내년부터는 정말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내와 함께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가보아야겠다.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 여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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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신혼집 꾸미기

아빠! 블라인드 달아주세요 

딸이 11월에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 여러 가지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왔다. 전세 아파트를 구하고 혼수용품을 하나씩 들여와서 제자리에 배치했다. 침대와 소파가 가장 먼저 들어와서 안방과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가전제품이 줄줄이 들어와 자기자리를 차지했다. 냉장고는 부엌공간에, 세탁기는 베란다에, TV는 거실에, 가스렌지는 주방을 차지했다.

토요일 아침에 딸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자기가 이사할 집 블라인드를 좀 달아달라고 한다. 며칠 전 주문한 블라인드가 도착해서 달아보고 싶단다. 달아 놓으면 어떨지 빨리 보고 싶다고 나를 조른다. 사위를 부르라고 했더니, 지금 자야 하니 안 된단다. 어제 저녁에 후배를 만나 늦게까지 술 먹었다고 한다. 아빠가 피곤한 건 안중에도 없으면서, 벌써부터 신랑 챙기기에 바쁜 모양새에 살짝 서운함이 든다. 나도 내심은 직접해주고 싶어서 못이기는 척 전동공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딸과 함께 사이좋게 블라인드 설치 작업 중 @ 여의봉

먼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제작된 거실 블라인드부터 작업을 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우드제품으로 짙은 색상을 띠고 있었다. 딸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나의 목표는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우리가 다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작하려고 보니 펜이 없다. 딸이 아이펜슬을 가져다주어서 사용해 보았다. 심이 물러서 한번 사용하고 나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화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잘 견뎌내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주변의 물건을 이용하여 일정한 거리 측정을 했다. 눈대중을 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블라인드 소켓을 천정에 고정시켰다. 블라인드 하나에 두 개의 소켓을 사용하도록 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블라인드를 모두 달아놓고 보니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작은방 긴 블라인드 설치를 위해서 준비중 @ 여의봉

딸의 도움으로 거실 블라인드를 모두 부착하고 나니, 작은방 두 개에도 해 달라고 한다. 비지땀이 흐르지만 딸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 기분 끝까지 유지하는 거야. 언제 나타나서 우리의 평화를 깨어지게 할 화란 놈을 잘 다스리며 작업을 했다. 서재와 옷방에는 매우 긴 블라인드라 전체 4개의 소켓을 달고 블라인드를 장착했다. 눈대중으로 했지만 일직선이 되어 잘 부착되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갑자기 야단이다. 서재 블라인드가 주문한 길이보다 짧아서 완전히 가려지지 않고 아래쪽이 약간 짧았다. 사위가 주문한 옷방 블라인드는 치수가 정확하게 맞는데, 자기가 주문한 것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평소 약간 덤벙되는 습관이 있는데, 남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모양이다. 약간 짜증이 올라왔지만 서로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맘이라고 생각하니 그놈의 화도 주춤거렸다.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우리의 평화는 잘 유지되었다.

블라인드 작업이 마무리 된 거실 모습 @ 여의봉

딸의 신혼집을 꾸미기는 일을 하면서 옛날 우리 신혼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 당시 방 두개 작은 부엌공간만 있으면 최고의 신혼집이었다. 전세 삼백만원에 첫 신혼방을 꾸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그 딸이 살림을 시작하는 지금은, 1억이 넘는 전세금에 천만원이 넘는 살림살이가 필요하다. 지금 아이들은 시작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다고는 하나, 사람들이 물욕에 많이 물든 것 같다.

우리나라 관혼상제에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평소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결혼에는 소박함을 꿈꾸었는데,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 같다. 아이가 많은 빚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참 답답하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교육에서 나오고, 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이다. 정신보다는 물질을 더 탐하는 모습에서 나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삶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배우자고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데,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딸과 사위가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나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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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연극제 결과가 나오다

대회의 약과 독

2015년 개천예술학생연극제 결과가 나왔다. 연기상으로 손경현(동상), 김보민, 김소연(은상), 권인화(대상) 4명이며, 무대예술상에 김주원(음향) 학생이 수상했으며, 단체는 장려상을 수상했다. 연기상이 4명이나 나온 것은 정말 기대 이상이다. 연기자 6명 중 남학생 2명을 제외하고 여학생 4명이 모두 수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이는 끼모아 팀의 연기가 매우 고르다는 반응에 대한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대예술상 수상은 무대장치, 음향, 조명에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장려상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기대상을 수상한 권인화와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 @ 여의봉

시상식에는 손경현, 권인화, 김주원이 참가하였고, 인화 어머니와 수희샘과 내가 함께 했다. 공교롭게도 시상식에 참여한 3명이 모두 수상하는 기쁨을 가졌다. 아이들이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자 기쁨의 고함과 함께 당황스럽고 기분 좋은 순간을 맞았다. , 연기대상은 2012년 박해인 이후 처음으로 수상하는 기분 좋은 상이다. 인화가 동아리장을 맡아서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다.

수상한 권인화, 손경현, 김주원의 환한 모습 @ 여의봉

상을 받은 아이는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상을 기대했지만 결과가 그렇지 못한 경우 고통의 시간이 된다. 대회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한 동안 힘든 시간을 겪어내야 한다. 물론 잘 이겨내면 성장으로 이어지지만,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연극마저 포기하는 아이도 종종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일이라,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번 대회 후에는 나도 심한 홍역을 앓고 지나갔다. 대회를 마치고 내 몸속으로 스며든 독을 해독하느라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작품을 지도하지만, 비록 아이들이라 해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는지 평가도 한다. 대회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신뢰하고 따라야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평가를 받을 때 서운함을 넘어서는 분노가 일 때가 있다. 아이들한테는 상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니 상처받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

이게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 여의봉

하지만 우리는 또 일어설 것이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는 결과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다시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시도를 포기하더라도 끼모아의 누군가는 다시 시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끼모아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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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위하여

연극대회를 참가하는 이유

끼모아가 917일 목요일에 진주에 있는 현장아트홀에서 개천예술학생연극제 참가 공연을 했다. 올해는 대회 참가에 더욱 까다로운 요구가 있었다. 1차 심사는 서류심사를 하고, 2차 심사는 작품을 연습하는 영상을 제출하여 최종 5팀을 선발했다. 끼모아는 2010년 창단 이후 2011년부터 매년 이 대회를 참가하고 있으니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참가다. 올해 작품은 다소 무거운 주제이다. 땡땡전자 파업으로 인하여 아버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족해체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 가는지를 다루었다. 고등학생인 아들딸의 시각으로 영화 만들기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접근해 간다. 주제어는 아버지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2015 개천예술학생연극제 포스터 @ 여의봉

태봉고는 공립 대안학교이다. 학교의 철학이 협력과 상생을 추구하기에, 경쟁을 해야 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회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목표점이다. 아이들과 함께 연극만들기 놀이를 하면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이라는 목표가 없으면, 그 과정이 나태해지거나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목표점을 설정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공연은 이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대회는 적은 경비로 좋은 무대경험을 해볼 수 있게 해주는 강점이 있다. 그리고 최고 강도의 몰입을 경험하게 해준다.

연극대회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매우 강하다. 그것을 이겨내는 아이들의 성장도 있지만, 견뎌내지 못하여 좌절하고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일이든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는 좋은 과정이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단련되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성장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극강의 몰입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감동호르몬인 다이드로핀이 분비된다. 소위 말하는 뽕을 맞는 것과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경험한 아이는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해 내는 것이다. 내가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감동을 느끼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며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연극대회를 참가하여 스탶과 지도교사들이 협의하는 모습 @ 여의봉

물론 대회참가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회의 결과는 참으로 원하지 않는 많은 아픔을 겪게 한다. 상을 목표로 하지 않지만, 그 결과로 주어지는 상은 소수의 개인에게 영광을 주기도 하지만 다수에게는 아픔을 주게 된다. 시상식이 있기 전에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같다. 끼모아들! 우리의 보상은 너희들의 성장으로 이미 받았다. 결과는 덤이다. 이 덤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 모두 최고의 연기상감이다.” 하지만 이건 감정의 문제인데, 어찌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다음 목표로 넘어갈 뿐이다.

끼모아의 목표점은 기본적으로 3개가 설정되어 있다. 1학기에 청소년연극제(경남대회-전국대회)가 있으며, 2학기 초에는 개천예술학생연극제가 있다. 학년 초부터 작품을 준비하여 청소년연극제를 다녀오고, 다시 작품수준을 업그레이드하여 개천예술학생연극제에 간다. 해마다 학생들의 연기력이 업그레이드되어 개천대회를 간다. 올해도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2학기 말에는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던 1, 2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워크숍공연과 3년 동안의 마무리를 하는 3학년 중심의 졸업공연이 있다. 이는 1년 동안 연극에 푹 빠져 미쳐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에게는 이것이 힘들어 떠난다고 했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총괄하고 지도하는 선생님 모습 @ 여의봉

대회를 참가하게 되면 12일간 고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 시간을 보낸다. 공연 전날 앞팀의 공연이 끝나는 9시경부터 무대설치, 조명 구역 설정, 음향 체크, 소품정리 등 무대세팅 작업이 11시까지 이어진다. 예전에는 밤샘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과열경쟁을 막고 스탶 보호를 위해 시간을 정해주고 있다. 물론 무대세팅이 하루 저녁 작업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다음날 최종 리허설에 들어가기 전까지 작업은 계속된다.

다음날 아침 9시에 다시 극장의 문이 열리면 아이들은 분장을 시작하고, 의상 소품을 맡은 학생들은 의상과 소품을 정해진 위치에 배치하게 된다. 이때 배우들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공연 중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시 점검하게 된다. 다시 조명의 세부적인 조정을 하고, 음향의 크기, 대사와 노래에 따라 어떻게 넣고 빠질지, 조명과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을 맞추는 연습을 한다. 현장에서 기계를 처음 만지기 때문에 음향과 조명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연전 분장실에서 분장하는 모습 @ 여의봉

이번 공연에서 음향에는 김주원, 조명에는 장예린이 맡아서 수고해 주었다. 당일 날 손에 익혀서 공연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는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태봉은 힘들지만 학생들이 직접해보게 한다. 실수도 좋은 배움이며, 실수를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음향을 맡은 주원이는 1학년 때부터 계속해오고 있으며, 배우를 한번 해보라고 권해도 한사코 마다한다. 조명을 맡은 예린이는 처음 해보는 것과 다름없지만, 감각이 있어 큰 실수 없이 잘 해내었다. 이 외에 분장에 최애주, 무대감독에 이승욱, 무대보조에 여한길, 의상소품 보조에 유지영, 박수빈, 촬영에 이건호, 조정현, 황지언 등이다. 많은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맡아서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음향과 조명실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스탶 모습 @ 여의봉

오전까지 분장, 음향, 조명 셋팅과 연습이 끝나고 나면 배우와 함께하는 테크니컬 리허설(테크리허설)을 하게 된다. 음향과 조명은 배우들의 연기에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가 목적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따라 조명과 음향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이때의 어려움은 배우로부터 음향과 조명은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해서 안 되며, 관객의 입장에서 소리의 크기, 조명의 밝기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객이 가득차면 소리를 더 보강해 주어야 한다. 이를 모두 감각으로 해야 한다는 게 힘이 드는 일이다.

다음은 조명과 음향이 세팅이 되고 마지막 연습으로 의상을 모두 갖추고 하는 드레스 리허설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연출은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들이 스스로 한바탕 즐기도록 모든 걸 맡겨두고 한사람의 관객이 된다. 이때 주문은 단 한가지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재미나게 즐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게 말뿐이지 실제 무대에서 쉽게 되는 건 아니다. 적절한 긴장감은 작품에 도움이 된다. 약간 긴장을 가지고 진지해질 때 아이들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공연에 앞서 드레스리허설 중인 끼모아들 @ 여의봉

공연은 언제나 그들에게 맡긴다. 이제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괜한 걱정마저도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들이 관객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스스로 진화해 나가며 성장을 이루어 낸다.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하게 생각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일어난다. 감동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더 이상 힘들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 느낌은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받는 축복이다. 힘들어도 내일 또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끼모아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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