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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정문에서 '여의봉의 행복한 아침맞이'를 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와서 작은 네모로 접혀진 메모지 한장을 주고 갔다. 메모지에는 머리띠를 하고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작은 글씨로 '팬클럽 이름 "손오공" 이에요' 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손오공 입니다. 수고하세요."

"손오공?!"

창덕중에서 새 둥지를 튼지도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첫 인상이 참 좋았다. 처음부터 맑고 밝은 미소로 나를 대해 주었다. 첫 부임 인사를 할 때도 큰소리로 박수와 함께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둘째날 부터 교문에서 퍼포먼스용 머리띠를 착용하고 '사랑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하이파이브로 아침 맞이를 했다.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빠르게 나타났고, 다가오는 학생이 많았다.

"쌤! 멋져요."

"그래. 고맙다."

"쌤! 귀여워요."

"그래? 하이파이브 한번 해!"

시끌벅쩍 부산하게 아침 맞이를 한다. 우리 학교의 정문은 언덕을 한참 올라와야 한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어,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다. 그래서 퍼포먼스 머리띠도 착용하고, 큰소리로 인사하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아이들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

내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팬클럽'이라는 것이 생긴 모양이다. 얼마 전 수업을 갔다오던 어떤 선생님이 그 사실을 귀뜀해 주었다.

"2학년 모반에 교감쌤 팬클럽 모집한다고 칠판에 적혀있던데요."

"뭐? 팬클럽이요?"

팬클럽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주 후반이 지날 쯤 체육관 앞 복도를 지나는데 아이들이 몰려와서 팬클럽 이야기를 했다. '그냥 재미로 장난으로 하는 거겠지.' 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아침, 정문에서 쪽지를 받게 된 것이다. 참 기분이 묘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연예인들이 이런 기분일까? 30여분 아침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손오공이지?"

"여의봉은 손오공이 가지고 다니는 요술봉이쟎아요."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네들은 잘 모를텐데..."

내가 처음 닉네임을 사용할 때는 지금의 '여의봉'보다 긴 '손오공의 여의봉'이라고 사용했다. '커져라. 쎄져라. 얐~~~!'하는 구호와 함께. 그러다가 태봉고에 가면서 간단하게 부를 수있는 닉네임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식어는 버리고 '여의봉'만 남겼던 것인데, 우리 아이들이 용케 찾아내었다.

십년만에 드디어 여의봉이 손오공을 만나게 되었다. 손오공의 손에서 여의봉은 어떤 요술을 부릴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학생들이 오고싶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꺼리도 있어야 한다.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학교는 나도 싫다. 이 아이들과 연극으로 한판 신명나게 놀아볼 궁리를 해 본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아침에 등교하면서 내가 하이파이브를 청하면 한명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응대를 해주고 간다. 어떤 학생은 아침 일찍 등교해서 못했다면서, 다시 내려와서 하이파이브 한번 하자고 한다. 또 하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새로운 풍경이 있다.

"쌤! 사진 찍어도 되요?"

"그럼! 가능하지"

"하나, 둘, 김치!"

아침 등교길에 갑자기 연예인 흉내내기가 한판 벌어진다. 하루에 몇 명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해서 셀카모드에 응해준다.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내가 기쁘하고 즐거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하나주고 열을 받는 기분이다. 

아직 겨울의 긴 꼬리가 다소 쌀쌀한 기운을 뽐내는 아침이지만, 아이들의 위로의 한마디에 마음까지 녹아내린다.

"샘! 쫌 춥지예?"

"쪼매! 고맙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 내 마음을 읽어내고, 하루를 버텨내는 비타민이 되어주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 교감이지만, 이정도면 잘 적응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야들아! 손오공의 여의봉, 맛좀 볼래?"

"너희들 꿈이 커지고, 열정이 더 쎄져라. 얏~~~"

이 밤 내마음은 벌써 내일 아침 정문으로 내려서고 있다. 오늘은 어떤 퍼포먼스로 아이들을 즐겁게 할까 고민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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