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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양보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로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기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자라서 독립할 때 참 기쁘고 대견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11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아이가 이것저것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다. 벌써 이사할 집도 얻었고, 가전제품 중 냉장고, TV, 세탁기는 준비를 했다. 자잘한 것은 제외하고 이제 침대와 소파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생각한 혼수의 규모가 있다. 그 중에 침대와 소파 중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좋은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평범한 것으로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두 가지를 모두 한다면 금액 상한선을 두고 논의 하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딸아이는 둘이서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서 매장을 둘러보고 결정하고 연락을 했다. 침대는 S사 제품으로 선금을 주고 왔고, 소파는 H사 제품으로 했다고 통보를 하는 것이다.

아내는 펄쩍 뛰면서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크게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금액이 예상치를 훨씬 벗어난데 대해서 집안 형편에 맞지 않는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부모와 의논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한 것이다. 딸과 아내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 내가 중재자 역할을 했다. 딸은 엄마를 설득하려고 할 뿐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 딸은 배려심이 많고 자신의 일은 자기 손으로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결정한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조율이 가능해야 의논을 할 수 있는데, 자기의 주장을 하고 꼭 들어 달라고 조른다. 아마도 자신의 뜻에 부모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설득하는 논리를 펴는 것이라고 본다.

서로가 언성이 높아지면 내가 소리를 낮추자고 중재하여 진정시켰다. 다시 대화가 시작되고 잠시 지나면 감정이 개입되면서 소리가 높아져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는 침대와 소파 문제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간다. 간소하게 하자더니 이게 간소하게 하는 것이냐? 우리 집안 형편을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냐? 시집 갈 돈은 너가 벌어서 하기로 했지 않느냐? 이야기가 수시로 본질에서 멀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나도 많은 부분 아내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그러나 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고 가능하면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딸에게 사소한 일도 대화를 통해서 풀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내를 설득해서 매장에 한번 가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북마산 가구거리로 갔다.

먼저 간 곳은 흔들리지 않는 침대로 유명한 S사 매장으로 갔다. 딸아이가 보아 놓은 것을 먼저 보고 설명을 들었다. 딸아이의 생각은 서로 예민한 성격이라 침실에서 서로 불편하지 않아야 하기에 S사 제품이어야 하고, 예비사위가 키가 커서 라지킹 사이즈가 되어야 한단다. 비싸지만 다른 혼수 부분의 가격을 줄이고 이것만은 꼭 사다싶다고 설득을 한다. 사장님께서 한 말씀 거들었다. 따님께서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서 가격조사를 다 해 와서 최저가로 해드린 겁니다. 꼼꼼해서 살림 아주 잘 살 겁니다.” 우리는 이 말에 다른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지인을 통해 알아 볼 만큼 알아본 아내도 결국 승낙했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로 소파를 보러 J매장에 먼저 갔다. 극장을 했던 자리라 매장이 크고 물건도 다양하게 있었다. 그리고 인근의 매장 두 곳을 더 가 보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딸의 마음을 잡을 만한 제품은 없었다. 가격, 색깔, 형태, 안락함, 가죽의 질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판매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니 더 혼란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창원 가구거리로 가서 지난번 보아 둔 소파를 보자고 해서 갔다. 지금까지 다니면서 앉아 본 것 중 가장 편안하고 좋았으며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가 들어 있을 줄 그때까지는 몰랐다. 딸은 리클라이너장치가 되어있는 소파를 선택해 놓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설득을 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아내의 눈에는 리클라이너의 안전성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 보기도 하고, 아내의 입장을 딸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이제는 소파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소파의 안전성 문제로 발전했다. 나 역시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소파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아내와 같은 입장이었다. 이제는 집에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시간은 벌써 저녁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해물찜이 먹고 싶다고 멀리 용원으로 배고픔을 감수하며 갔다. 저녁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마무리 되고 소주도 한잔 했다. 오는 길에 차안에서 아내는 자기가 승낙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다른 제품은 사는데 오십만원을 지원해 주겠다. 나머지는 너가 보태서 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훈훈하게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승낙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각자 생각이 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딸과 나는 리클라이너제품을 허락한 것으로 알았고, 아내는 안전에 대해서 동의 했으니 리클라이너아닌 제품으로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오마이 갓! 이제까지 나의 중재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과 한잔의 취기가 더해져서 아내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내가 급랭모드로 바뀌었다. 이제 딸이 엄마를 달래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 너무 걱정 하지마! 내일 다시 생각해 볼게.” 아침이 되어 나는 아내에게 카톡 문자를 보냈다. 여보! 어떤 이유로건 화낸 건 미안해요. 어제 나도 많이 힘들었나보오! 화풀고 제대로 먹어요. 건강 나빠지면 안돼요.” 딸에게는 ! 아빠 출근한다. 엄마가 금액적으로 다 들어 주었으니, 리클라이너는 너가 양보해라. 어제 엄마와 그 일로 갈등한 것 때문에 아빠 맘이 편치 않네. 현명한 우리 딸! 엄마 마음 한번만 읽어주면 안되겠니?”, 그러자 딸에게서 답글이 왔다. 엄마가 리클라이너 찾아보니, 엄마가 심하게 걱정한 것 같다고 신경은 좀 쓰여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는데, 일단 가죽이나 A/S 부분 때문에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음.”

아내도 맘이 편하지 않아 밤새 조사를 해본 것이다. 딸도 엄마를 이해를 하고 조금 더 알아보기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딸이 이번 일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한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집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항상 의논이 가능하도록 마음과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결과는 딸이 국내 유명브랜드 제작업체를 방문해서 리클라이너 기능이 없는 가죽의 질, 편안함, A/S , 가격 등이 만족할 만한 소파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평화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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