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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중학교를 떠나며

 

 

안민중학교에서 관리자로서의 모습이, 마치 첫 발걸음을 떼어놓은 아기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매사가 조심스럽고 잘 해보려고 하지만 뒤뚱거리며 걸었을 것이고, 내 몸을 내 맘대로 가누지 못해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보고자 했던 것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적인 학교경영에 부경영자로서 나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교장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생각으로 학교를 경영하기는 어렵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 속에서 나름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첫걸음이 호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10년 전부터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생님또는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만이 아니라,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시는 분들 모두를 선생님으로 불렀다. 교무행정 선생님, 행정실 선생님, 급식소 선생님, 지키미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줄여서 누구누구 샘이라고 불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직급과 직능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봉고 이후에는 하지 못했다. 혜수쌤, 희철쌤, 은미쌤, 윤정쌤으로 부르지 못하고 교장쌤, 교무부장님, 실장님, 차장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용기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학교의 문화가 아직 이러한 호칭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합의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어본다.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이 이점을 간과하여 어려움을 겪은 줄 안다. 자율적으로 해야 할 일을 반 강제성을 띠고 추진하려 했기에 반발에 부딪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 문화에서 아직까지 아래 직급에서 위 직급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 닉네임을 부르는 방법을 대안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나 또한 태봉고에 근무하면서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여의봉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안민중에 와서도 여의봉의 의미를 전달하고, 메신저를 보낼 때도 이름 대신 사용하기도 했지만, ‘여의봉 쌤이라고는 불리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쌤이라는 호칭보다 교감이라는 호칭에 더 젖어 살지 않았나 하고 성찰해 본다.

 

20193월 새 학기에 창덕중에서 제2기 교감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시 여의봉 쌤또는 봉 쌤으로 살기에 도전해 보고자 한다. 물론 호칭은 내가 강요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고,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무실 문화를 만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호칭문제에 연연하는 것은 서로 평등한 관계와 서로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안민중을 떠나는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그동안 나름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내지 않고 살아내기라는 화두를 어느 정도 실천했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러한 화두를 가진 이유는 이런 생각에서다. 일반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반증이다. 이 말은 내 뜻대로 하려는 의도를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의도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이 생긴다. 그런 연유로 화를 내지 않겠다는 것은 내 뜻대로가 아닌, 우리의 뜻을 모아일을 추진하겠다는 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가지고 살자는 것이었다. 결국 당신의 뜻을 받들고 살겠습니다.’라는 여의봉(如意奉) 정신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아침 교문에서, 학생들의 아침 맞이를 하면서 다양한 이벤트를 했던 것도, 봉으로 살고자 했던 삶의 실천이다. 종이 주인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하듯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봉으로 아침 맞이를 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학생들 얼굴을 잘 모르고,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사용한 방법이었지만, 참으로 좋은 소통방법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내 눈에 익어지고, 이름이 입에서 맴돌다가 툭 터지기도 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힘든 표정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한번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머리띠이벤트를 시작했고,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얌전한 절과 함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던 것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사랑합니다로 바꾸었더니 더욱 활기찬 아침 맞이가 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안민이여!

이제 나는 너를 떠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란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가 되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2019. 02. 15. 아침에 여의봉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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