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안교육을 한답시고 이 길을 걸어온 지 벌써 8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나의 알음알이는 별로 넓어지지도 깊어지지도 않았다. 태봉을 설립한다고 경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 1년 반을 보냈고, 경남 Wee스쿨에서 2년 동안 파견생활 한 것을 제하고 나면, 태봉에서만 4년 반을 보냈다. 태봉에서의 생활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만큼 큰 의미가 있다. 오늘 아침 여러분들과 함께 내 삶의 흔적을 살펴본다.

 

나는 1959년 의령의 자굴산의 정기를 받아 가난한 농민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남동생만 셋이다 보니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아직도 손에 흙과 물을 묻히고 사신다.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별다른 꿈을 꾸지도 않고 교사가 되었다. 물론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첫 발령을 받았으니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되어서도 현실에 만족하며 큰 어려움 없이 생활했다. 아니 별 생각 없이 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어느 날...

 

내가 교사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삶의 새로운 도전 기회가 왔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일부 몇 사람은 젊지도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그때의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것이, 참으로 의미 있는 도전이 되었다.

 

태봉에 오면서 태전샘과의 만남이 나의 교육자로서의 생활에 많은 성찰을 요구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도록 했다. 교육은 왜 하는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꿈꾸는 것이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LTI교육과정이 우리나라에도 실행 가능한 것인가?, 자율과 규제의 균형추는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등이다.

 

태봉에서 행복한 일은 먼저 좋은 동료교사들과의 만남이다. 처음 10명의 교사가 함께 출발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지내왔지만, 지금 현재 이곳에 계신 선생님과도 마찬가지다. 잠시 한분 한분 떠올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수소리 한 번에 사방이 고요로 물들게 하시고 마음을 챙기라 하시네

원한 마음공부의 스승으로 모시고, 평생 마음을 다스리며 살고지고

련은 몸 만아니라 마음도 필요하니 자주자주 훈련하여 심력을 기르라시네

 

군의 용모를 지닌 듯 훨친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매로

(옹달샘)으로 불리며 매 순간 대안교육에 대한 샘솟는 의문을 가지시면서

기 바짝 든 대안학교 초짜 교감으로 고군분투하며 보내고 계신다.

 

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멋진 흰 수염 바람에 휘날리며 허허 거리시고

수함과 열정으로 가득차서 뜨거운 용암을 입으로 토하듯 불호령을 내리시고

자무식한 자가 읽어도 이해가 되는 쉬운 시를 쓰며 통일을 그리신다.

 

마담이라는 닉네임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비며 산다

상도 말도 구수하게 할 줄 아는 열정적인 강사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시고

려한 날개 짓을 하는 나비의 꿈을 전파하는 옹골찬 여전사이시다.

 

연 많은 태봉살이를 잘 견디어 내고 있는 당신이 장하오

를 쓰다가 몸져 눕기도 했지만, 그래도 명상과 단무도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의 사랑 단단해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어 고맙고 감사하오.

 

정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제자들이 그득한 사람

녕 그대는 둥글게 둥글게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놀이의 달인

간을 겸손과 존중과 감사로 대하는 참사랑 스승의 표본이시다.

 

(흐르는 물)처럼 항상 맑고 밝은 정신으로 고인물 같은 선배를 질책하고

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축해 나가는 맑은 향기를 가진 사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들이받아도 그래야 살 수 있는 거야라고 한다

 

용히 눈을 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꺼덕거리는 사람

도 많아 아이들과 심한 감정싸움에 졸업식장에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사람

망을 노래하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대안교육의 큰 일꾼이 될 사람

 

하고 굵은 선으로 가지고 있으며 무뚝뚝하게 직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

하고 착한 심성으로 모든 아이들을 어머니 마음으로 껴안고 사는 사람

다 검다 말하지 않아도 그 선이 분명한 사람 써니 당신입니다

 

명의 역할을 해 내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그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지?

확한 언어구사능력과 빠른 머리회전으로 대책을 내놓는 달변가이시다

대되는 대안교육 전문가로 미래의 태봉을 이끌어갈 분! 그대 이시다.

 

하하 맑은 웃음소리가 사람들의 방어막을 일순간에 해제 시킨다

봉의 엘티아이는 이 사람을 제외하고 논하지 말아야 할 일꾼중의 일꾼이다

종걸음으로 다니는 모습처럼 열심히 대안교육을 위해 힘쓰소서.

 

학교까지 세 번의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며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친구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친구

이라 부르며 온갖 괴롭힘으로 나에게 친근함을 표하는 못된 친구다

 

대로 그만 둘 줄 알았던 탁구와 배구는 어깨 수술 후에도 계속 되고

서벽지 외로운 섬에 아이들과 함께 무인도 체험활동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계를 정하고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 일관된 지도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없이 넉넉한 가슴속에는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있나요?

구하기만 하면 졸졸졸 샘물처럼 사랑이 솟아 오르네요!

하게 씨익 한번 웃어주면, 세상시름 모두 녹아 내리네요.

 

늘만 이 사람을 보아야 한다면 너무나 가혹합니다

도하게 흐르는 저 강물처럼 늘 함께하고 싶습니다

롯불 속 군밤이 익어가듯 구수함이 베어져 나오는 정깊은 사람이시다.

 

롯하게 모든 것을 갖추고도 아무것도 없는 양 조용한 당신

롱 속에 깊이 넣어둔 보석도 제 빛을 발하듯 아이들 앞에서 그 빛을 발하고

곡을 흘러내리는 저 폭포수처럼 큰 울림을 줄 사람이다.

 

치도 없는 영국생활에 만족하며 배움을 위해 해외연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럼 큰 눈망울 속에는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호수가 있다

과 성을 다해서 아이들과 만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추신) 말로 이 여자를 데려갈 사람 어디 없나요?

 

을 담뿍 담은 표정으로 다가와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구 탐험 도전에 나선 듯 올 들어 외국 나들이가 무척 잦아 행복한 사람이

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쉼표 같은 관리자가 되라고 하네

 

성을 다해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살피는 태봉의 주치의 선생님

많은 학생들이 가까이 와서 힘들게 치닥거려도 화내는 법이 없는 선생님

심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가가고 싶은 선생님

 

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모습에 독서 삼매경이 이런 게 아닐까?

말로 우리 아이들이 책과 함께 삶의 목표를 찾기를 바라는 사람

구실 같이 조용한 곳이지만 치열하게 삶을 논하는 태봉골() 주인장이시다

 

수 차를 끓여내며 방문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사람

수골 무당이 대잡이 하듯 그들이 던져 논 아픔을 풀어내고 지쳤다가

방 도로 기운을 차리며 새로 맞을 아이들을 기다리는 당신

 

녕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사람

미있는 유머로 사람의 얼굴에 생 주름을 피어오르게 하는 사람

제나 행복한 웃음 코드를 찾아서 이곳저곳 교무실을 헤매는 해피바이러스

 

리 뛰고 저리 뛰며 아이들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네

미나는 일들이 많은 듯 항상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해 주시는 님

기 좋은 꽃처럼 맛있는 식사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자 노력 하시네

 

해와 인접한 진해 용원에 사시면서 그 먼 길을 달려 태봉에 오신다

련스러울 정도로 한 세월 모성애로 버티고 살아온 이야기에도 감동이 있다

(부엌)간도 아낌없이 내주어 아이들과 행복한 캠프를 함에 감사드린다

 

에 참기름을 발라 구운 듯 구수한 말씨와 입담으로 주변을 늘 깨어있게 하신다

소 띤 얼굴로 속사포를 쏘듯 말씀도 시원하게 잘하시니 함께하면 행복해진다

취에 해장국처럼 맘 풀이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을 찾으면 됩니데이

 

시같이 발그레한 볼이 될 때까지 이리 저리 몸을 사리지 않고 걸레를 든다

내는 일 한번 본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눈과 입에 미소가 머문다

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성녀처럼 도움을 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다음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태봉 인사법 허그를 실행하면서도 과연 나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도 안아주기를 해줄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낯설어 했지만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따라 주었고, 서먹해 하던 선생님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실행하였다. 이제는 누구나 알아주는 태봉 인사법이 되었지만, 서로 안아주는 것만큼 서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1기 학생을 맞으면서 가슴 벅차던 일,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어주어 성장하게 해주었던 일,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하여 당당하게 서게 되는 일, LTI PT Day를 통해서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도 보여주고 자랑스럽고 당당모습도 보여주어 우리를 감동하게 했던 일 등 모두가 행복한 기억을 남을 것이다.

 

태봉하면 끼모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연극은 아주 좋은 도구이다.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몰입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몰입할 때 우리 몸 속에서 다이드로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이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 큰 성공으로 나아가게 한다. 뿐만 아니라, 넘어지는 연습, 실패하는 연습을 많이 할수록 탄탄한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끼모아는 연극 연습을 통해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넘어지는 연습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공연이라는 과정에서 앙상블이라는 성공의 보상을 받는다. 태봉살이 3년 동안 넘어지는 연습만 하고 사회에 나가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손잡아 줄 사람이 있을 때 이런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 세상은 넘어지면 손잡아 끌어주기 보다 짓밟는 경우가 많다. 끼모아에서 연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끼모아를 했다고 해서 연기자의 길을 걸을 필요도 없다. 연극을 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할 일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난다. 이 길 또한 가보지 않은 길이고, 거칠고 험한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믿고 사랑을 믿고 나는 이 길을 가련다. 그 길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 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도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별을 향하여

 

 

태봉! 나의 태봉!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지금까지 잘 해 왔듯이 앞으로도 잘 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이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태봉을 맡기고 떠난다. 이제 태봉은 남의 자의 몫이다. 학생이 오고 싶은 학교, 학생이 행복한 학교, 교사도 근무하고 싶은 학교, 언제라도 다시 오고 싶은 학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녕, 태봉~~!

 

2016. 8. 29. 월요일 아침 주를 열며... 여의봉 서용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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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의봉

자연과 함께하는 산길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임도를 따라 트레킹 수준이다. 꼭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로 운동하는 곳은 진해 앞 바다가에 난 해안로 트레킹코스이다. 평지라 큰 무리가 없고 바닷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어 함께 운동하는 맛이 괜찮다. 그런데 차도 옆으로 다녀야 하는 관계로 매연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다.

풀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사진을 찍는 아내 @ 여의봉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장복산 임도를 따라 난 드림로드 트레킹이다. 아직 몸상태가 시루봉 등산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트레킹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 중이다. 자주는 산에 가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산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산을 오르면서 우리 두 사람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산에 가는 것은 운동을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다는 정해진 목표점까지 무작정 올라간다.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흘러내릴 때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이 된다.

길가의 코스코모스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여의봉

그런데 아내는 산에 오르는 목적이 나와 다르다고 한다.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자연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겨 올라가는 도중에 길가에 자주 앉는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살피고 사진을 찍는다. 이름 모를 들꽃에게도 새들의 노래소리도 단풍드는 나무며 도로 가장자리에 피어난 버섯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없다. 산을 오르며 세월을 느끼며,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참을 풀꽃들과 노디다가 뒤따라 오는 모습 @ 여의봉

내가 산으로 오르며 느끼는 것은 해안도로에 갈 때보다 공기가 참 좋다는 것이다. 오르기는 힘들지만 평지를 걸을 때는 자갈소리도 흙을 밟는 느낌도 좋다.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다. 나는 정상까지 힘들게 땀 흘리며 오르면 목표를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하산한다.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내와 함께 오르는 산길에서 느낀다. 일거리를 주말까지 집으로 가져오는 내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요즘은 주말에는 가능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길가에 피어난 버섯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 여의봉

하지만 요즘 다시 새로운 학교 개교업무를 맡으면서 주말에도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생각을 그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하는 일이 벌써 세 번째이다. 올 겨울방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내와 여행도 계획했는데, 또 다시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다. 결혼생활 내내 학교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는 나 때문에 많이 외롭게 보냈다. 내년부터는 정말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내와 함께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가보아야겠다.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 여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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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의봉

아빠! 블라인드 달아주세요 

딸이 11월에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 여러 가지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왔다. 전세 아파트를 구하고 혼수용품을 하나씩 들여와서 제자리에 배치했다. 침대와 소파가 가장 먼저 들어와서 안방과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가전제품이 줄줄이 들어와 자기자리를 차지했다. 냉장고는 부엌공간에, 세탁기는 베란다에, TV는 거실에, 가스렌지는 주방을 차지했다.

토요일 아침에 딸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자기가 이사할 집 블라인드를 좀 달아달라고 한다. 며칠 전 주문한 블라인드가 도착해서 달아보고 싶단다. 달아 놓으면 어떨지 빨리 보고 싶다고 나를 조른다. 사위를 부르라고 했더니, 지금 자야 하니 안 된단다. 어제 저녁에 후배를 만나 늦게까지 술 먹었다고 한다. 아빠가 피곤한 건 안중에도 없으면서, 벌써부터 신랑 챙기기에 바쁜 모양새에 살짝 서운함이 든다. 나도 내심은 직접해주고 싶어서 못이기는 척 전동공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딸과 함께 사이좋게 블라인드 설치 작업 중 @ 여의봉

먼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제작된 거실 블라인드부터 작업을 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우드제품으로 짙은 색상을 띠고 있었다. 딸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나의 목표는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우리가 다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작하려고 보니 펜이 없다. 딸이 아이펜슬을 가져다주어서 사용해 보았다. 심이 물러서 한번 사용하고 나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화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잘 견뎌내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주변의 물건을 이용하여 일정한 거리 측정을 했다. 눈대중을 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블라인드 소켓을 천정에 고정시켰다. 블라인드 하나에 두 개의 소켓을 사용하도록 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블라인드를 모두 달아놓고 보니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작은방 긴 블라인드 설치를 위해서 준비중 @ 여의봉

딸의 도움으로 거실 블라인드를 모두 부착하고 나니, 작은방 두 개에도 해 달라고 한다. 비지땀이 흐르지만 딸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 기분 끝까지 유지하는 거야. 언제 나타나서 우리의 평화를 깨어지게 할 화란 놈을 잘 다스리며 작업을 했다. 서재와 옷방에는 매우 긴 블라인드라 전체 4개의 소켓을 달고 블라인드를 장착했다. 눈대중으로 했지만 일직선이 되어 잘 부착되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갑자기 야단이다. 서재 블라인드가 주문한 길이보다 짧아서 완전히 가려지지 않고 아래쪽이 약간 짧았다. 사위가 주문한 옷방 블라인드는 치수가 정확하게 맞는데, 자기가 주문한 것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평소 약간 덤벙되는 습관이 있는데, 남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모양이다. 약간 짜증이 올라왔지만 서로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맘이라고 생각하니 그놈의 화도 주춤거렸다.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우리의 평화는 잘 유지되었다.

블라인드 작업이 마무리 된 거실 모습 @ 여의봉

딸의 신혼집을 꾸미기는 일을 하면서 옛날 우리 신혼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 비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 당시 방 두개 작은 부엌공간만 있으면 최고의 신혼집이었다. 전세 삼백만원에 첫 신혼방을 꾸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그 딸이 살림을 시작하는 지금은, 1억이 넘는 전세금에 천만원이 넘는 살림살이가 필요하다. 지금 아이들은 시작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다고는 하나, 사람들이 물욕에 많이 물든 것 같다.

우리나라 관혼상제에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평소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결혼에는 소박함을 꿈꾸었는데,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 같다. 아이가 많은 빚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참 답답하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교육에서 나오고, 교육은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이다. 정신보다는 물질을 더 탐하는 모습에서 나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삶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배우자고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데,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딸과 사위가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나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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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의봉